[중앙일보 이정권.이현택.이정권] DSLR로 불리는 렌즈 교환식 고급 디지털 카메라가 대세인 시대. 서울 삼청동이나 부산 해운대, 아니 전국 어디를 가도 두툼한 가방을 메고 우람한 렌즈가 달린 DSLR의 셔터를 연신 눌러대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가 지금 연애에 한창이라면 가방 한쪽에는 배경을 없애고 여자친구의 얼굴을 예쁘게 찍어준다고 해서 일명 ‘여친렌즈’라 불리는 ‘EF 85mm1.8 USM’이 들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가 개성있는 스타일의 소유자라면 다른 한쪽에는 손때가 잔뜩 묻은 ‘옛날 카메라’가 수줍게 앉아 있을 터다.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20세기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는 왜, 그리고 어떻게 공존하고 있는가.

글=이정권·이현택 기자, 사진=이정권 기자# “색감이 달라요”카메라를 아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맛이 다르다”고. 아무리 디지털 카메라가 첨단을 달려도, 첨단이 채워주지 못하는 뭔가를 그 옛날 클래식 카메라는 갖고 있다고.

35mm 카메라의 살아 있는 전설 ‘라이카’는 비싼 가격 때문에 아무나 만지지 못하는 희소성은 둘째치고, 기계적 완성도만으로도 ‘예술품’으로 손색이 없다. ‘핫셀블러드’는 번거로운 조작법과 무거운 바디로 악명높지만 결과물이 주는 ‘보상’덕분에 ‘불편한 행복’으로 불리고 있지 아니한가. 목측식(촬영자의 눈으로 어림잡아 초점을 맞추는)촬영방식으로 유명한 ‘로모’는 손바닥만 한 크기에 장난감 같은 외모에도 여전히 매니어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라이카M3를 좋아한다는 라이카보이닷컴 운영자 강승철(46)씨는 “라이카의 경우 흐린 날이나 어두운 날 찍으면 느낌이 살아난다. 흑백으로 찍으면 화선지에 붓으로 툭툭 친 느낌이랄까”라고 전했다. 30년된 콘탁스 D1을 여전히 친구처럼 데리고 다닌다는 콘탁스 한국클럽 송재웅(71)회장은 “어두운 곳에서 찍은 역광의 느낌은 디지털 카메라가 아직 못 쫓아올 정도”라고 말한다.

핫셀클럽 전재영(54)회장은 정교한 작동과 뛰어난 성능, 6X6판형이 주는 예술적인 느낌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진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타 기종에 비해 샤프니스와 셰도의 디테일이 뛰어나고 입체감이 잘 살아난다”며 “전체적인 콘트라스트가 높은 편이라 흔히 ‘쨍하다’는 말로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 “손맛도, 귀맛도 달라요”클래식 카메라는 ‘맛’이 있다. 바디를 손에 쥘 때 느끼는 단단하고 야무진 그립감. 그리고 셔터를 누를 때의 짜릿함. 송재웅 회장은 “수동으로 조작하는, 집중하는 맛”이라고도 표현했다.

참을 수 없는 ‘감성’을 느끼게 하는 맛을 내는 또 다른 재료가 ‘셔터음’이다. 귀를 즐겁게 하는 독특한 ‘찰칵’소리와 손끝에 느껴지는 ‘떨림’ 때문에 특정 모델만 고집하는 매니어도 있다. 니콘FM-2 유저 김태민(25)씨는 “무엇보다 ‘찰칵’하는 경쾌한 소리가 감칠 맛”이라고 말했다.

라이카 M3를 주로 사용한다는 회사원 박찬영(52)씨는 “레인지 파인더를 통해 원근감 없이 평면으로 보면서 셔터를 누를 때 손끝에 전해져 오는 쾌감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전율적”이라고 설명했다.

더욱 ‘필름맛’에 중독된 매니어라면 ‘암실’이라는 주방을 차려놓고 혼자만의 은밀한 ‘맛’을 즐기기도 한다. 롤라이 유저 박순(37)씨는 6학년 때 “사진은 이런 것으로 찍어야 맛이 난다”고 한 아버지를 떠올린다. “아버지가 몇에 몇을 맞추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시고 또 그 말에 맞춰 노출을 조절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노출 노리개가 고장이 났더라고요. 실제로는 조절이 안 된 셈인데, 그럼에도 사진이 잘 나왔어요.”“(핫셀블라드를)만지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보고 있기만 해도 흐뭇하다”는 전재영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디지털 사진이 대세로 자리잡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하지만 아마추어나 순수 사진을 추구하는 사진가들에게 아직도 필름이라는 매체는 대단히 매력적이죠. 앞으로도 필름 카메라를 이용하는 사진가는 계속 존재할 것입니다.”# 그리고 20세기의 추억오래된 것일 수록 빛나는 것 중에 ‘클래식카메라’도 한몫한다. 세월의 길이만큼 수없이 긁혀진 몸체와 색바랜 가죽커버는 그 모습 자체만ㅇ르로도 잔잔한 엄숙함을 느끼게 하며 중고 클래식카메라가 활발하게 거래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젊은이들이 클래식카메라에 열광하는 것도 이런 ‘명품 빈티지’스런 스타일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사 준 롤라이 35 S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는 박순씨는 말한다. “롤라이나 라이카는 오래 사용하면 도금이 벗겨져 황동빛이 약간씩 묻어나는데, 그러면 또 그 멋이 있다. 찌그러지거나 상처가 난 것도 인간적이고.”디지털 카메라와 다른 또 다른 맛을 느끼기 시작한 젊은층은 물론이고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여유를 느끼는 40~50대들에게 클래식 카메라는 그들의 품위와 고상함을 대변해 준다. 어느날 훌쩍 떠나는 여행의 동반자로 자신의 추억을 담고 표현해 주는 훌륭한 도구이자 고급 장난감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 탓일까? 필름 스타일만 고집하던 제조사들도 점차 디지털화된 제품으로의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그럼에도 클래식카메라의 고풍스런 스타일은 세월의 두께만큼 더욱더 높고 견고해질 것이 분명하다.

카메라 관련 주요 사이트▶ 라이카클럽:http://www.leicaclub.net▶ 핫셀블라드클럽:http://www.hasselclub.net▶ 콘탁스클럽:http://www.contaxclub.co.kr▶ 온라인갤러리:http://www.raysoda.com▶ DSLR동호회:http://www.slrclub.com

출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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